일상 기록

낯섦과 공포에 대해서

JPaul 2022. 1. 14. 17:50

뭔가 낯선 것을 처음 접하게 되면 종종 나는 설렌다.

낯선 거리에 갑자기 똑 나 혼자 떨어졌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런데 종종 그 낯섦이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설렘은 갑자기 공포로 돌변한다.

 

위와 똑같다.

잘 모르는 곳에 나 혼자 떨어져 있을 때.

잘 모르는 새로운 일을 갑자기 해야 할 때.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을 갑자기 만날 때.

 

잘 모르는 것에서 우리는 공포를 느낄 때가 있다.

 

얼마 전에 에일리언을 재주행 했다. 요즘 집중력이 많이 떨어져서 한 번에 다 보지 못하고 

몇 번씩 나눠 보기는 했지만 결국 1편부터 4편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1편이 1979년에 개봉한 영화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렇게 오래된 영환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편이 다 재밌었는데 몇 년 전에 봤던 에어리언 커버넌트나 프로메테우스도 굉장히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영화에 대해서 검색하다 보니 생각외로 1편과 2편을 제외하고는 영화에 대한 평가가 별로 좋지 못했다.

특히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커버넌트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했고

에어리언 3,4 에 대한 평가도 별로 좋지 못했다.

 

나무 위키 같은곳에는 정말 정말 장문의 너무 길어서 다 읽지도 못할 것 같은 비평글이 있었다.

하지만 대략 요약을 하면 

 

대성공을 거둔 에어리언 1/2에서 만들어진 에어리언이라는 영화의 아이덴티티를 후속작에서 잃어버렸다는 데에서 오는

팬들의 실망감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도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생각할 때는 그다지 실패한것 같지도 않지만 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에어리언이라는 영화의 가장 큰 테마는 사실 공포이다. 그리고 그 공포는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글의 시작을 낯설음이라는 것으로 시작한 이유가 사실 이거다.

 

에어리언이 가지고 있는 낯설음을 영화가 해소해 버렸기 때문에 공포를 잃어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읽었는데

과연 그러한가 생각해 보았다.

 

에어리언은 외계의 기원을 알 수 없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무섭고

또 그 외관이 이 세상에 존재할 법하지 않은 기괴한 형상이기 때문에 무섭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에 또 무섭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래 두 가지는 사실상 모든 영화에서 동일하기 때문에 일단 제쳐두고 생각해 보면

에어리언의 공포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는 데에서 원초적인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무언가가 있다는 부분이

에어리언이라는 캐릭터의 특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공포라는 장르에는 여러가지 소재가 있는데

에어리언 같은 괴물이나 귀신뿐 아니라 사람도 그 소재중의 하나이다. 

사람은 사람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에 사이코 패스를 주제로 한 영화들이 유행한 적이 있는데 사실 수십 년 전부터 살인마는 공포영화의 단골 소재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포의 핵심은

 

사람이라는 익숙한 존재에서 느껴지는 이질적인 낯섦에 있다.

 

내가 아는 익숙한 것들

예를 들어 오늘 아침에 인사한 옆집 아저씨라던지 학교의 선생님들 중 누군가가 

갑자기 살인마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공포를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길게 돌아왔지만 나는 에어리언 4에서는 이종교배가 주는 기괴함에서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 커버넌트에서는 인공지능이 가지고 있는 비 인간성에서 

공포심을 느꼈다.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매일매일 공포스럽지는 않다.

하지만 내일이 완전히 예측 불가능한 낯섦으로만 가득 찰 수도 있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을 들으면

사람들은 공포에 빠진다.

내일은 사실 예측 불가능하다. 전혀. 다만 사람들이 예측 가능하다고 믿고 있을 뿐.

 

우주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도

인공지능에 대해서 우리가 상상하는 이미지도

귀신이나 유령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도

시대에 따라 계속해서 변해왔다.

실제로 아는 게 아니라 안다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똑같은 미지의 공포를 재현한다 해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걸 얼마나 비슷하게 구현하느냐 하는 것은 감독의 몫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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