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 우울증이 생겼다.
우울증을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극도의 무기력함에 시달리게 되는데 정말 아무것도 하기가 힘들다.
단순히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침구를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고 하는 이런 일상적인 일에서 문제가 생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일을 할 때 필요한 아주 간단한 작업들을 못하게 되었다.
이게 너무 당황스러웠는데 마치 어느 날 갑자기 구구단을 외울 수 없게 된 느낌이었다.
구구단을 못하니 단순 곱셈을 하는데 하루 종일 걸리게 되어서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단순히 글 몇 줄을 쓰는 것이나 반복 작업 같은 게 극도로 힘들어졌는데
나 스스로 보기에도 남들이 보기에도 처음에는 내가 그냥 게을러졌다고 생각을 했다.
일을 안 하고 가만히 앉아서 노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그런데 사실 가만히 앉아있는 시간 자체가 나는 굉장히 힘들었다.
일을 하고는 싶은데 도무지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왜 할 수가 없는지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는데 그냥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해야 할 일들을 못하게 되면서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졌는데
어느 날 일을 하려고 책상에 앉아서 모니터를 보는데
갑자기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고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차기 시작했다
그날은 하루 종일 글 한 줄 쓰질 못했다.
일상생활에도 문제가 생겼는데
말 그대로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먹고 자고 하는 모든 일상이 점점 엉망이 되었다.
일 뿐만이 아니라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 모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무엇을 해도 즐겁지가 않고 재미가 없었다.
영화를 10분 이상 볼 수가 없었으니까.
밤에 잠을 자지 못해서 커피를 끊었다.
그래도 회복이 되질 않았다. 잠을 못 자니 피로가 심해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게 점점 심해졌는데
커피도 끊은 상태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이 오는 것 같으면 중간중간에 라도 잠을 자서 보충을 했는데
이러다 보니 수면 사이클이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하루 주기로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그냥 수면 시간이 어느 땐 2시간 어느 땐 12시간 이런 식으로 주기가 엉망으로 꼬였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상황이 되다 보니 음식을 먹는 것도 당연히 문제가 되었는데
일단 몸이 너무 피로하면 소화가 잘 안 되고 식욕이 없어져서 잘 안 먹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너무 굶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힘이 없어서 아예 일어날 수가 없다.
무기력증이 심해지면 음식을 조리해 먹는 행위가 귀찮아서 점점 안 하게 되는데
음식을 하지 않으면 먹을 음식이 없으니 그냥 계속 굶게 된다.
나는 그래서 간단히 까서 먹을 수 있는 단백질 바 같은 대체식품으로 몇 달을 살았는데
솔직히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굶어서 힘이 없고 힘이 없으니 모든 것이 귀찮아서 결국 아무것도 못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으니 규칙적인 식사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 보다도
힘이 없고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면
아 내가 또 한참 굶었구나 하고 엉금엉금 기어가서 뭐라도 씹어 삼킨다.
그러고 나면 잠깐이지만 혈당이 올라서 기분이 좋아진다.
그래서 뭐라도 움직이고 글이라도 끄적이고 근근이 버틴다.
블로그를 시작하는 이유는 이거다.
나는 내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사는지 이제 점점 감각이 희미해지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과 격리되어 혼자서 매일매일 컴퓨터와 살고
식사도 수면도 낮도 밤도 즐거움도 없이 살고 있다.
나는 원래 몽상가였지만 요즘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미래를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두렵고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오늘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래도 뭔가를 남겨야 하기 때문에 블로그를 추천받아서 하기 시작했다.
매일이 썩어서 흩어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이런 시간들을 통해서 내게 뭔가 남길 수 있는 것도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
오늘을 그나마 버틸 수 있으니까
그냥 뭐라도 하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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