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물의 정서
좀 뜬금없는 제목이긴 한데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느낌대로 써봤다.
몇 년 전부터 좀비물이 유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너무 식상해져서 그런지 안 나오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미드 중에서는 가장 유명한 게 아마 워킹데드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좀비물이라면 역시 킹덤이랄까. 부산행도 있다.
일본의 좀비물은 좀 이상한 게 많지만 대표적으로는 아이엠 히어로 정도가 있을 거 같다.
이렇게 비슷한 소재로 다른 나라들에서 만든 콘텐츠들을 보다 보니
나라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서가 일관적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나라 안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지만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이나 소재를 가지고도
중점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좀비물을 예로 들자면
미국의 좀비물은 굉장히 현실적이다.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치료는 가능한지 이런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는 감정적인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좀비의 발생 원인이나 치료 같은 부분에서부터 원한이나 욕망 같은 판타지스러운 설정을 쓰는 경우도 있다.
중점적으로 다루는 내용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감정들의 부딪힘을 표현한다.
그래서 캐릭터 개개인의 사연을 디테일하게 다루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경우는 모든 것을 좋게 말하면 절제해서 표현하고 나쁘게 말하면 가볍게 표현한다.
그래서 좀비물도 코믹하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고 감정적인 부분도 현실 적인 부분도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감각적인 측면과 감성적인 측면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좀비물 같은 경우는 소재 자체가 완전히 겹치기 때문에 나라별로 차이점이 확연하게 와닿았는데
생각해 보니 다른 것들도 비슷비슷한 게 많았다.
한국사람은 공감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 드라마는 보는 사람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감정적인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데
(감정을 쉽게 고조시키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복잡하게 배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인 표현을 심하게 과장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신파가 된다)
미국 사람들은 단도직입적인 표현을 선호하고 본질과 핵심에 집중하는 편이기 때문에
감정적인 디테일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비교적 부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 두 가지의 균형이 중요한데
감정에 치우쳐서 본질을 잃으면 막장 드라마가 되고 본질만 끌고 가다가 공감을 잃어버리면 철학 영화가 되기 쉽다.
(이런 영화들은 너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로 인해서 심히 졸릴 수 있다)
한국의 경우는 판소리나 창 같은 것만 봐도 감정의 극한을 보여주는데 이러한 정서가 그대로 영화나 드라마에 반영되는 것 같다.
반면 일본의 전통극은 과장된 동시에 절제된 표현을 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저건 연극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는 느낌으로 표현해야 한다. 실제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그건 전통극이니까 그런 거고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진짜처럼 연기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도 있는데
일본의 저런 부분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게 일본 만화이다.
우리가 흔히 만화적인 표현이라고 하는 일본 만화에서 나오는 표현들은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가짜에 가깝다. 예를 들자면 자기 머리를 때리면서 '데헷' 하고 웃는다거나.
그림체를 예로 들자면
같은 만화라는 이름을 공유하는 장르지만 미국 만화와 일본 만화의 그림체는 누가 봐도 극명하게 다르다.
같은 사람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더라도 각각 표현하고자 하는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이런 부분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중간 과정이 생략되고 스토리나 상황의 비약이 쉽게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비약이 용납되는 이유는 캐릭터들의 행동이 개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묘사되기 때문인데
뭔가 이상한 상황이 있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긍정하도록 표현하면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가볍게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에는 문화별로 이렇게 특성이 달라지는 이유는 그 문화에서 소비되는 혹은 선호하는 콘텐츠의 종류가 각각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외국 작품을 리메이크할 때 대중적인 인기를 고려한다면 소비되는 문화권의 정서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나는 이번 생은 처음이라 라는 한국 드라마를 재밌게 봤는데
굉장히 비슷한 소재와 내용을 가지고 있는 일드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와 비교를 해보면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감정의 공감을 위한 빌드업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다.
이번에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오징어 게임도 소재의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조금 아쉽지만
완성도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글이 엉망진창인데... 정리 좀 하자.
미국 좀비물은 목적 의식이 뚜렷하다. 서바이벌.
한국 좀비물은 극한 감정 공감의 디테일. 신파
일본 좀비물은 이성적인 상상력의 결과. 성장물.